허리케인 샌디

2012년 말 미국 동부 해안에 허리케인 샌디가 상륙했다. 폭풍 직경이 최대 1,520 km로 북대서양 사상 최대 규모의 허리케인으로 기록이 되었고 사망자는 약 113명, 피해액은 미국에서만 자그마치 639억 달러 규모로 2005년 카트리나 허리케인에 이어 2번째로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미국의 무명용사비

한편 미국 메모리얼 데이를 기념하기 위해 어느 한 사용자에 의해 올려진 사진 한장이 SNS 를 뜨겁게 달궜다. 그 사진이 이슈가 된 이유는 사진이 찍힌 시점이 당시 미국 북동부에 허리케인 샌디가 불어닥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도시가 마비되고 대피령이 떨어졌지만 알링턴 국립묘지를 지키던 제 3 보병대대 영현병들은 그 자리를 지켰다고 한다. 

특히 이 영현병들이 허리케인에도 지킨 무덤은 바로 '무명용사비' 였다. 이 무명용사비에는 세계 1차 대전과 2차대전,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에서 희생된 미군 무명용사들이 잠들어 있다.


▲ 2012년 10월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 국립묘지를 지키는 영현병들

▲ 알링턴 국립묘지 무명용사비


HERE RESTS IN HONORED GLORY AN AMERICAN SOLDIER

KNOWN BUT TO GOD


이곳에 명예스럽고 영광스러운 미국 군인들이 잠들어 있다.

신에게만 알려진..



 세계 초강대국의 군대
미국의 군사력은 GFP 기준으로 육군/해군/공군 모든 부분에서 확고부동안 세계 1위이다. 
연간 국방비 지출은 약 6천억 달러 규모로 2위인 중국의 2천억 달러에 비해서 약 3배의 차이가 난다. 
약 150만명에 달하는 병력으로 전세계에서 3개의 전쟁을 동시에 치룰 수 있을 정도로 인류 역사 상 전무후무한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미군 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며 미국 사회에서 그들의 위상은 매우 높다. 이는 미국 국민들이 군인들에게 대하는 태도만 봐도 알 수 있다

"THANK YOU FOR YOUR SERVICE."

미국 국민들은 군인들에게 "Thank you for your service" 라고 인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그만큼 미국 사회에서 군인들이란 자신들을 위해 '희생'하는 소중한 존재라는 인식이 강한 것 같다.


 우리나라는?
우리나라 최대 검색 포털 사이트에서 '무명용사비'를 검색해 봤다. 재밌는 사실은 이미지를 검색해 보면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 무명용사비'가 제일 많이 검색이 된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신미양요무명용사비' 가 검색이 된다. 신미양요?! 그리고 '삼국통일 무명용사비'도 있다. 삼국통일은 고구려, 백제, 신라를 얘기하는 것이겠지?!

그래서 '현충원 무명용사비'를 검색해 봤다. 이상하게도 검색되는 사진이 없다.
현충원 무명용사비를 검색했는데 사진이 없다는 것에 놀라는 내가 이상한 건가?

▲ 침묵과 존중 - 알링턴 국립 묘지


▲ 독립군 무명용사 위령탑 - 현충원 내에서도 구석에 처박혀(?) 있다고 한다.


오래전 TV 프로그램에서 우리나라의 독립군 유족 분들이 국가로 부터 제대로된 인정과 보상을 받지도 못한채 가난에 고통받으면서도 독립운동가 자손으로서의 긍지를 지키는 모습을 봤다.


얼마전에는 중국에서 발견된 일본 731 부대의 마루타 실험관련 자료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잡혀와 이름없이 희생된 조선인에 대한 이야기도 봤고, 현충원이 방문객들의 쓰레기와 무분별한 행동들로 인해 곤욕을 치룬다는 기사도 봤다.


과연 우리는 우리의 역사와 과거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에게 어느정도의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제대로 된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 해결해야 할 숙제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Posted by 한스재중


지난 8월 23일 미국 파워볼(로또) 사상 최다 금액 당첨자가 나왔다. 당첨 금액은 758,700,000 달러 (약 7억 6천만 달러, 한화로 8,500억원) 이다. 일시불 수령 시 세금 약 36%를 제외하고도 실 수령액은 4억 8천만 달러 (한화로 5,376억원) 가량 된다.

당첨자는 치코피 지역의 머시의료센터에서 일하는 53세 여성인 메이비스 웨인치크라고 한다. 당첨 번호는 6, 7, 16, 23, 26, 파워볼 4 였다. 그녀는 자신과 가족, 친구의 생일 등에서 생각나는 숫자를 조합해 복권을 샀다고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게 웃긴게, 생일이라고 하면 최대 나올 수 있는 숫자가 31이다. 당첨 번호도 보면 26이 제일 높은 숫자다. 파워볼이 숫자가 69까지인데, 그럼 무려 절반을 넘는 32번부터 69번까지는 뭐한거야? 상식적으로 보면 확률을 깎아먹는 숫자 조합이 아닌가 싶은데, 당첨이 되긴 한다.

 

 

파워볼의 실질적 최고 당첨 금액은 작년 1월의 16억 달러(한화 약 1.8조원) 였으나 당첨금을 3명이 배분하면서 개인 당첨금액은 약 5억 3천만 달러라 이번 당첨자보다는 적다. 

이번 당첨 금액이 높은 이유는 지난 6월 10일 이후 21회차 연속으로 당첨자가 나타나지 않아 금액이 누적되었다고 한다.

 

미국 파워볼은 미국에서 인기있는 복권 중 하나로, 미국 43개 주와 워싱턴 DC, 미국령 버진아일랜드에서 연합으로 발행하는 로또식 복권이다. 2016년 미국 전역에서 판매된 파워볼 복권은 약 800억 달러(약 90조 5000억원) 가량 된다고 한다. 추첨 방식은 1부터 69까지 적힌 공 중에 5개를 뽑고 26개의 파워볼 중에 한개를 뽑아 총 6개의 숫자를 맞추는 방식이다. 당첨확률은 2.9억분의 1의 확률이라고 한다. (69C5 x 26C1 ㅋㅋ)

 

    1) 동전을 던져 28번 연속 한면만 나올 확률 ---- 1 / 2.6억

    2) 번개에 맞을 확률 ------------------------------- 1 / 1.8억

    3) 운석에 맞아 죽을 확률 ------------------------- 1/ 70만

       (번개에 맞아 죽을 확률보다 운석에 맞아 죽을 확률이 더 높단다.)

    4) 국내 로또 당첨 확률 --------------------------- 1/ 814만

       (국내 로또 당첨 확률보다 파워볼 당첨확률이 약 35배 낮다)

 

당첨자는 현재 일하던 병원을 그만둔 상태이며 놀라움에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다만 쉬고 싶다고 했다한다.

 

당첨자가 현재 53세이니까 100세까지 저 돈을 다 쓰고 죽으려면, 남은 47년동안 월 9.5억, 8시간의 취침시간을 제외하면 시간당 6천만원 가량씩을 써야 한다.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1시간만 봐도 죽을때 6천만원을 남기고 가야한다.

그리고 당첨금액을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예수님이 태어난 이후에 2017년 동안 매년 2.6억을 벌어야 모을 수 있는 돈이다.

Posted by 한스재중

 친웨이쟝과 중국 흑사회

이 이야기는 중국 CCTV에도 방영되었고 국내에서도 어느정도 알려져 있는 얘기지만 국내에서 떠도는 얘기들이 일부 와전된 내용들이 있는 것 같아, 중국 인터넷 기사등을 뒤져서 재 정리한 내용이다.

 

중국 인민해방군 집단군 군장 친웨이쟝(秦卫江), 중국 조직폭력배(흑사회)를 박살내 놓은 인물이다. 흑사회라는 건 '삼합회'같은 조직 이름은 아니고 중국에선 조폭들을 통틀어 '흑사회'라고 부른다.


   ▲ 친웨이쟝(秦卫江)


 친웨이쟝은 누구?

친웨이쟝이란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면, 북경군구 27 집단군 군장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군단장이고, 계급은 대교였다. 대교라고 하면 영관급 최상위 계급(대령급)이지만 중국 인민해방군 계급이 우리나라와 달리 장성급이 3개(소장, 중장, 상장)로만 이루어져 있어 상위 순으로 따지자면 준장급으로 볼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군단장급은 통상적으로 중장이 맡는다. 현재 이 사람의 계급은 일부 사진에서 별 2개를 달고 있는걸로 보아 중장까지 진급한 것으로 보인다.

북경군구라고 하면 우리나라로 치면 수도방위를 담당하는 제 3 야전군으로 볼 수 있고, 집단군은 그 예하의 군단급으로 보면 되겠다. 집단군 군장이면 휘하 병력이 약 5만명에 예하 3개 보병 사단과 기갑여단, 포병여단, 대공포여단, 3개 육군 항공여단등이 배치되어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북경군구 집단군 군장 급이면 시진핑의 측근이라고 하니, 위세가 말도 안되게 높겠다.

 

그런데 어떤 한 멍청한 흑사회가 이 사람을 잘못 건드리는 바람에 묵사발이 난 사건이다.



 사건의 전초

2007년 9월 친웨이쟝은 어느날 친구와 함께 참모만을 대동하여 부대 근처에 있는 진바이판사우나(金伯帆洗浴中心)라는 4성급 호텔에 가게 된다. 그런데 그 호텔은 오유(吴迪)라는 흑사회 보스가 관리하는 조직 거점이었다.

 


 ▲ 사태가 일어난 호텔, 당시 지역에서 제일 크고 인지도 높은 호텔이었다고 한다.


친웨이쟝은 호텔에서 사우나를 마친 후 친구와 얘기를 하다 실수로 찻잔을 깨뜨리게 되는데, 곧 사과를 하고 배상을 해주겠다고 한다. 그런데 웨이터는 10위안(한화 약 1,500원) 짜리 찻잔이니 50위안을 내놓으라고 하고, 어이없는 웨이터에게 화가난 친웨이쟝은 10 위안 짜리인데 왜 50 위안을 내야 하냐며 배상은 해주겠으나 너무 가격이 높다고 한다. 그러자 웨이터는 50 위안이 비싸면 100배를 내라고 소리를 치고 친웨이량은 이미 머리 끝까지 화가난 상태였다. 


 

 ▲ 중국 흑사회, 본 사건과는 무관한 양아치 도화지들

 

그때 옆에 대동하였던 참모가 호텔 매니저를 부르라고 하자, 웨이터는 호텔 매니저를 보려면 500위안을 내라고 한다. 마침 호텔 매니저가 내려오고, 참모는 이 분은 근처 부대 군장인데 웨이터가 너무 비싼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고 하자, 그 소리를 듣던 매니저는 당신이 군장이면 우리도 군장이라며 무시한다. 화가 날대로 난 친웨이쟝은 당신들 조폭이냐고 묻자, 매니저는 조폭이 맞다. 그럼 어쩔꺼냐며 되받아 친다. 



 돌격 앞으로

친웨이쟝은 화를 꾹 참고 참모에게 500원을 건네주라고 말하며 호텔을 빠져나온다. 호텔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휘하 보병 여단장에게 전화를 하고 여단장은 바로 휘하 부대원에게 출동 명령을 내린다. 이때 출동한 병력은 총 500여명으로 200명은 95식 자동보총으로 무장, 300명은 야전삽과 곡괭이로 무장하고 장갑차 20대, 군용트럭 10대, 대전차 무기 20기가 같이 출동하였다고 한다. 대전차 무기는 왜..? ;;

 

먼저 200여명은 호텔 주변을 봉쇄하고, 100여명은 친웨이량을 호위하고 나머지 200여명은 명령 대기 중이었다.

 

 

 ▲ 호텔을 봉쇄한 병력

 

총 500여명이 병력이 친웨이량에게 경례를 하고 명령을 기다리고 있자. 호텔 매니저가 다시 나타났다. 그때 친웨이쟝이 찻잔 하나를 가져와 매니저에게 이게 얼마냐고 묻자. 매니저는 겁에 질려 아무말도 못했다. 곧 명령 대기 중이던 200여명의 병력이 호텔의 1층에서부터 4층까지, 다시 4층에서 부서 1층까지 호텔을 박살내기 시작했다. 해당지역에서 제일 크고 꽤 인지도가 있었던 그 호텔은 그 사건으로 완전히 박살이 났다.

 

 

 ▲ 박살난 호텔


 흑사회 보스의 반격?

당시 흑사회의 보스, 즉 사장이었던 오유(吴迪)는 호텔에 없었다. 호텔이 누군가에게 박살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오유는 자기 부하 500 여명을 모았다. 그 당시 그는 자신의 호텔을 부수고 있는 사람들이 군인 들이라는 사실은 몰랐기에 부하들은 큰 칼과 심지어는 권총까지 휴대하고 호텔로 향했다. 

하지만 호텔에 도착한 500여명의 조직원들은 군인들이 호텔을 부수는 장면을 보고는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대부분 도망쳤다. 110여명 정도가 뒤이어 도착했지만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사람들은 100여명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도 군인들이 호텔을 부수는 모습을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멍청한 놈들이긴 하지만 한번에 600여명이나 모을 수 있었다는 걸 보니 나름 꽤 큰 조직이었나 보다. 그만큼 중국이란 나라가 개판이라는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권력의 개입

그 후 공안국 국장이 도착했지만 친웨이쟝의 계급을 보고는 당황하여 호텔을 부숴도 상관없지만 사람은 다치게 하지 말아달라는 말만 남기고 떠났다. 

공안국 국장이 떠나자, 공안 안전 전문가가 나타났다. 그 역시 아무말도 못하고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그 후 무장 경찰 부대장이 나타났지만 친웨이쟝을 보고 오히려 경례를 하고 떠나버렸다. 

이어서 석가정시(石家庄市) 규율법서기가 나타났는데 친웨이쟝과 담소만 나누고 떠나버렸다. 

오유는 마지막으로 '친구'라고 부르는 하북성 고위관료에게 전화로 도움을 요청했으나, 그마저도 자신이 참견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라며 관여하려하지 않았다고 한다.

 


 ▲ 친웨이쟝(왼쪽)과 그 부친 친치웨이(오른쪽)

 

 친웨이쟝의 실체

그제서야 상황을 알아챈 오유는 친웨이쟝에 대해 조사를 했는데, 친웨이쟝의 아버지인 친치웨이(秦基伟)는 중국 인민해방군 상장으로 북경군구사령원, 중국국방부장을 역임하며 막강한 위세를 떨친 인물이었다. 중국 계급상 상장은 최고 계급이다. 우리나라 대장급이라고 봐도 되고, 북경군구사령원은 1군 사령관, 중국국방부장은 국방부장관 쯤으로 보면 되겠다. 쉽게 말해 오유 입장에선 넘사벽도 이런 넘사벽이 없는 것이지. 이 정도면 시장이 와도 커버 못할 것 같다.


호텔이 완전히 박살난 후 오유는 여러차례 친웨이쟝을 찾아가 용서를 구하고자 200만 위안(한화로 약 3억)을 보상하겠다고 했으나 친웨이쟝은 문전박대를 하며 만나주지도 않았다. 마지막으로 친웨이쟝은 오유에게 사람을 보내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돈은 필요없고 호텔을 다시 수리해놓고 기다리면 자신이 다시 군인들을 보내 때려부수고 이 일을 끝내겠다고 전했다 한다.

 


▲ 법정에 선 오유(맨 오른쪽)



 흑사회 보스 오유의 몰락

친웨이쟝은 군대를 사사로이 움직였다는 이유로 사소한 징계만을 받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오유는 결국 그 지역에서 세력을 잃고 다른 지역으로 떠나버렸다. 그 후 2012년 흑사회 조직 혐의 및 여러가지 혐의로 징역 20년형 벌금 약 400만 위안을 선고 받았다고 한다.

Posted by 한스재중


부모님과 이마트 갔다가 발견. 궁서체의 진지함을 노린건가?!

Posted by 한스재중


성공은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 하고 피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에 당당히 맞서는 법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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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스재중

출처 : 중앙일보 박용성 만평 http://news.naver.com/main/cartoongallery/index.nhn?mid=pho&sid2=307#025_0002654436


한 나라의 대통령이, 국가의 자긍심과 자부심을 한번에 무너뜨리다니..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사실에 눈물난다.

차라리 거짓말이었으면, 오해였으면 좋겠다.

Posted by 한스재중

 

 

Posted by 한스재중

 

 

"정치가에게 가장 이상적인 삶의 방식은 그들이 봉사하고자 하는 또는 대표하고자 하는 다수의 사람들처럼 사는 것이다."

- 호세 무히카 -

 

남아메리카의 인구 340만의 작은 나라 우루과이의 대통령 호세 무히카

1935년 5월 20일 생으로 우루과니 제40대 대통령을 지냈다.

체 게바라 이후 가장 위대한 남미 지도자로 평가 받으며, 프란치스코 교황으로 부터 "현자"라 칭송 받은 대통령이다.

하지만 그를 평가하는 가장 널리 알려진 수식어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이다.

 

대통령 취임후 2012년 42명이 관리하던 대통령 궁을 노숙인 쉼터로 개방하고, 국가에서 제공한 해변 휴양 도시의 대통령 별장을 팔아버렸으며 대통령 재임 당시에도 자신의 농장에서 텃밭을 가꾸고, 대통령 재임 기간 뿐 아니라 퇴임시에도 28년된 폴크스바겐을 직접 운전하는등 전형적인 대통령의 모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 우루과이의 대통령 궁

 

▲ 대통령 취임식 당시 직접 자신의 차량을 몰고 나타난 무히카 대통령

 

게다가 한화로 약 1,300만원 가량 되는 대통령 월급의 90% 이상을 서민주택 건설 사업에 기부하며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많은 우루과이 사람들이 적은 돈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난 벌금을 내는 심정으로 기부를 합니다."

 

2015년 초 그가 신고한 재산액은 총 3억 5천만원 가량으로 부인이 소요한 농장, 중고차, 트랙터 2대가 전부라고 한다.
그리고 그의 집은 거실과 방, 부엌이 1개씩인 허름한 농가에  불과하고 그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나서 변한 것이라고는 농장 근처에서 경호를 위해 대기하는 2명의 경찰 뿐이라고 하니 검소하다 못해 가난한 괴짜 대통령이라는 이라는 수식어가 더 어울릴지 모르겠다. 그는 자신의 검소한 삶이 이슈가 되는 것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세상 사람들이 왜 그렇게 호들갑인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작은 집에 살고, 보잘 것 없는 살림살이에, 낡은 자동차를 몰아서? 이게 어떻게 뉴스거리가 되는가요? 그렇다면 세상이 이상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을 놀라워하고 있으니까요"

 

▲ 무히카 대통령의 차고

 

▲ 집을 나서는 무히카 대통령

 

▲ 하..할아버지.. 옆집

 

2010년 3월 대통령 취임 당시 그의 지지율은 52%로 매우 높았다. 그런데 그의 퇴임 당시 지지율은 65%로 취임 당시의 지지율을 훌쩍 뛰어넘었다. 하지만 그가 단순히 검소한 대통령이기에 존경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의 재임기간 동안 우루과이는 평균 5.7%의 경제 성장율을 달성하였고 빈곤율 하락, 최저 인건비의 50% 향상을 이룩하였고 이는 라틴 아메리카의 평균 성장률을 웃도는 고성장이었다.

 

▲ 취임시 지지율보다 퇴임시 지지율이 훨씬 웃도는 무히카 대통령

 

▲ 우루과이의 경제 성장률

 

뿐만아니라 그의 정치적 행보 역시 평범하지는 않았다.
2012년 여성의 권익을 높이기 위해 낙태 허용 법안을 제안했고, 2013년에는 동성 결혼을 허용하면서 세계에서 12번째,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두번째로 동성간 결혼을 허용한 나라가 되었다. 그는 이러한 파격적인 법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고 한다.

 

“매우 간단한 원칙을 적용해봅시다. 그것은 객관적인 사실을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낙태는 이 세상만큼 오래된 것입니다. 동성결혼은 이보다 더 오래된 것입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그 예입니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동성결혼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고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객관적인 현실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합법화하지 않으면 불필요하게 그들을 고문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또한 당시 반발이 심했던 마리화나의 경작을 합법화 하고 정부가 경작과 유통을 통제하도록 하는 법안을 만들었다. 여론의 반발이 심했지만 그는 마리화나 거래의 음성화를 막고 이로인한 마약단체의 성장을 견제하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 이로 인해 그는 두번이나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우리는 이제야 비로소 마약정책에 대한 다른 길을 시도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억압으로는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이룰 수 있을지는 아직 장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중독도 도움이 되지 않음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근심은 마리화나보다 훨씬 먼 곳에 가 있습니다. 우리는 마약 마피아를 겨냥하고 있는 것입니다.”

 

▲ 마리화나 합법화에 찬성하는 티셔츠를 입은 청년들

 

그 외에도 2014년 관타나모에 수용 중인 포로를 난민으로 받아 들이는 등 강대국과의 대립도 서슴치 않았다. 이렇듯 당시로서는 파격적이다 못해 정치적으로 위험해 보이는 정책들을 추진하기도 하였다.그는 여론의 저항을 받더라도 인권 등과 관련해서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관철시키고자 했으며 그를 바탕으로 생활은 다수의 평민의 입장에서, 인권을 위해서는 소수자들의 입장에서 서려고 항상 노력했다.

 

"정치인은 다수의 견해에 따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야만 선거에서 이길 수 있을테니까요, 그러나 어떤 길을 확신하게 되면, 때때로 선구자적인 결정을 하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소수의 편에 서는 정치적 용기를 발휘해야 합니다. 일부러 여론과 싸울 필요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여론의 노예가 되어서도 안됩니다."

 

▲ 공식 석상에서 무히카 대통령의 과감한 패션

 

▲ 누가 대통령인지..?

 

그는 한때 군사 독재에 맞서 게릴라 조직인 "투마파로스"의 리더로 활동하였다.
1970년대 하수구에서 무장 투쟁을 벌였고 여섯발의 총상을 입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나기도 했으며 또한 투옥 기간 중에는 땅굴을 통해 두번의 탈옥에 성공하기도 했다. 결국 군사 정권에 체포된 후 13년간 책조차 읽을 수 없는 독방에서 수감생활을 하다 1985년 국제 사면 위원회의 도움으로 석방되었다.

 

▲ 우루과이의 게릴라 조직 '투마파로스'

 

군사정권이 무너진 후 좌파 정치 조직인 민중참여운동(MPP)를 대표해 1994년 하원의원, 1999년 상원의원으로 당선되었고, 2005년에는 좌파 연합인 광역전선(Frente Amplio)가 집권하면서 농축수산부 장관에 임명되고 2009년에는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우루과이 제 40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된다.

 

그는 게릴라 시절에는 근본주의자로, 정계에 진출하면서는 실용주의자로 변화하며 적대 정치 세력에 대해 복수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인 연대를 추진하는 등 정치에 대해 맹목적인 태도를 경계하기도 하였다. 그가 게릴라 시절 당시 변절한 동료들에 대해 한 말을 보면 그의 정치적 사상이 어떤지 어렴풋이 알 수 있다.

 

"그들이 변절한 이유는 사실 간단합니다. 거울을 보다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봤기 때문이죠.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내 얼굴이 이렇게 초췌해졌군,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라고.. 그들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나약해진 것입니다. 이렇듯 솔직함이란 때로 아주 무서운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격정적인 동시에 지적인 순수함을 지니고 있습니다.(중략)나는 인생을 통해 참 여러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인간이란 동물이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때는 대가가 참 크다는 사실 같은 것 말입니다."

 

▲ 지나가는 닭 한마리가 인상적인 무히카 대통령의 인터뷰

 

▲ 윗 사진과 너무 대조된다..;;

 

우루과이에 거주하는 아코스타(Gerhald Acosta)는 자신이 일하는 종이공장에 출근을 했으나 신분증 기한의 만료로 작업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마땅한 이동수단이 없었던 아코스타는 집으로 가기 위해 히치하이킹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차들이 지나쳐 갈때 정부 자동차 번호판을 탄 차량이 멈춰섰고 아코스타는 안을 들여다 보고 깜짝 놀랐다. 자신이 타려는 차를 대통령이 직접 운전하고 있었고 조수석에는 영부인이 앉아 있었다. 대통령과 부인은 흔쾌히 자신을 태워 목적지까지 데려다 줬고, 아코스타는 너무 황당하고도 고마워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한다.
아코스타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 했다.

 

"대통령이 나를 차에 태워줬다. 그리고 상황을 설명하니 집까지 데려다 주셨다. 이 사실을 나는 믿을 수 없었다. 대통령 부부는 매우 친절했다. 그날 하루 동안 비록 일하지는 못했지만, 이 짧은 여행은 더없이 소중하고 유쾌했다"

 

또한 무히카 대통령은 한 아랍의 부호로 부터 소유하고 있는 1987년형 폭스바겐 비틀즈 차량을 100만 달러에 사겠다는 제의를 받았다. 무히카 대통령은 만일 차량을 100만 달러에 판다면 서민 주택을 건설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뜻을 밝혔지만 결국에는 기르던 개가 그 차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거절했다고 한다.

 

▲ 무히카 대통령이 28년동안 타고 다니는 1987년형 폭스 바겐

 

그 사람의 말에는 그 사람의 철학이 담겨져 있다. 무히카 대통령의 말들은 별도 어록으로 편찬될 정도로 좋은 말들이 많다고 한다. 주로는 검소한 생활, 정치 그리고 행복에 대한 철학이 담겨져 있는 말들이 많다.

 

"나는 가난하지만 마음을 절대 가난하지 않습니다. 삶에는 가격표가 없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질이 아니라 삶을 누릴 수 있는 시간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동정이 아니라 기회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적게 소비하는 것입니다."

 

"대통령과 국민 사이에는 거리가 없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통령을 지나치게 받을어 모시는 풍조를 없애야 한다."

 

"내가 무엇을 살 때 그것은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돈을 벌기 위해 쓴 시간으로 사는 것입니다. 시간을 아껴서 정말 좋아하는 일에 우리에게 힘이 되는 일에 써야 합니다. 시간을 우리 자신을 위해 쓸 수 있을 때 나는 그것을 자유라고 부릅니다."

 

"인생을 살면서 고통의 짐을 짊어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이 짐만 바라보며 살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앞을 향해 걸어가십시오. 우리가 기필코 지키고 사랑해야 할 만큼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므로"

 

"나는 가난하지 않습니다. 단순하게 살 뿐입니다. 사람이 사는데는 그다지 많은 것이 필요치 않습니다."

 

"나에게 가난한 자란 너무 많은 것을 원하는 사람입니다. 너무 많은 것을 원하는 사람은 도무지 만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가난의 옹호자로 비쳐지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다만 낭비와 불필요한 지출과 에너지 고갈과 무엇이든 탕진하며 사는 삶을 견딜 수 없을 따름입니다."

 

▲ 유엔 총회 연설 중인 무히카 대통령

 

"우리는 발전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지구에 온 것입니다. 인생은 짧고, 생명보다 더 귀중한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 2013년 유엔 총회 연설 -

 

개인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다. 이 분의 행보를 보고 있자니 왜? 라는 질문이 계속된다.

한 나라 권력의 정점에서 모든 것을 마다하고 낮은 곳에서 서민들과 함께 하는 대통령 그리고 이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

당장 우리나라에도 이런 분이 대통령이 된다면 어떨까?

대통령으로서의 품위가 없다느니, 교육도 제대로 못받았느니, 좌파 종북이라느니..

우리나라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일 생각하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어쨋든 이런 대통령을 가진 우루과이 사람들이 부럽다.

 

Posted by 한스재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