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에게 가장 이상적인 삶의 방식은 그들이 봉사하고자 하는 또는 대표하고자 하는 다수의 사람들처럼 사는 것이다."

- 호세 무히카 -

 

남아메리카의 인구 340만의 작은 나라 우루과이의 대통령 호세 무히카

1935년 5월 20일 생으로 우루과니 제40대 대통령을 지냈다.

체 게바라 이후 가장 위대한 남미 지도자로 평가 받으며, 프란치스코 교황으로 부터 "현자"라 칭송 받은 대통령이다.

하지만 그를 평가하는 가장 널리 알려진 수식어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이다.

 

대통령 취임후 2012년 42명이 관리하던 대통령 궁을 노숙인 쉼터로 개방하고, 국가에서 제공한 해변 휴양 도시의 대통령 별장을 팔아버렸으며 대통령 재임 당시에도 자신의 농장에서 텃밭을 가꾸고, 대통령 재임 기간 뿐 아니라 퇴임시에도 28년된 폴크스바겐을 직접 운전하는등 전형적인 대통령의 모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 우루과이의 대통령 궁

 

▲ 대통령 취임식 당시 직접 자신의 차량을 몰고 나타난 무히카 대통령

 

게다가 한화로 약 1,300만원 가량 되는 대통령 월급의 90% 이상을 서민주택 건설 사업에 기부하며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많은 우루과이 사람들이 적은 돈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난 벌금을 내는 심정으로 기부를 합니다."

 

2015년 초 그가 신고한 재산액은 총 3억 5천만원 가량으로 부인이 소요한 농장, 중고차, 트랙터 2대가 전부라고 한다.
그리고 그의 집은 거실과 방, 부엌이 1개씩인 허름한 농가에  불과하고 그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나서 변한 것이라고는 농장 근처에서 경호를 위해 대기하는 2명의 경찰 뿐이라고 하니 검소하다 못해 가난한 괴짜 대통령이라는 이라는 수식어가 더 어울릴지 모르겠다. 그는 자신의 검소한 삶이 이슈가 되는 것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세상 사람들이 왜 그렇게 호들갑인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작은 집에 살고, 보잘 것 없는 살림살이에, 낡은 자동차를 몰아서? 이게 어떻게 뉴스거리가 되는가요? 그렇다면 세상이 이상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을 놀라워하고 있으니까요"

 

▲ 무히카 대통령의 차고

 

▲ 집을 나서는 무히카 대통령

 

▲ 하..할아버지.. 옆집

 

2010년 3월 대통령 취임 당시 그의 지지율은 52%로 매우 높았다. 그런데 그의 퇴임 당시 지지율은 65%로 취임 당시의 지지율을 훌쩍 뛰어넘었다. 하지만 그가 단순히 검소한 대통령이기에 존경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의 재임기간 동안 우루과이는 평균 5.7%의 경제 성장율을 달성하였고 빈곤율 하락, 최저 인건비의 50% 향상을 이룩하였고 이는 라틴 아메리카의 평균 성장률을 웃도는 고성장이었다.

 

▲ 취임시 지지율보다 퇴임시 지지율이 훨씬 웃도는 무히카 대통령

 

▲ 우루과이의 경제 성장률

 

뿐만아니라 그의 정치적 행보 역시 평범하지는 않았다.
2012년 여성의 권익을 높이기 위해 낙태 허용 법안을 제안했고, 2013년에는 동성 결혼을 허용하면서 세계에서 12번째,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두번째로 동성간 결혼을 허용한 나라가 되었다. 그는 이러한 파격적인 법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고 한다.

 

“매우 간단한 원칙을 적용해봅시다. 그것은 객관적인 사실을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낙태는 이 세상만큼 오래된 것입니다. 동성결혼은 이보다 더 오래된 것입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그 예입니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동성결혼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고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객관적인 현실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합법화하지 않으면 불필요하게 그들을 고문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또한 당시 반발이 심했던 마리화나의 경작을 합법화 하고 정부가 경작과 유통을 통제하도록 하는 법안을 만들었다. 여론의 반발이 심했지만 그는 마리화나 거래의 음성화를 막고 이로인한 마약단체의 성장을 견제하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 이로 인해 그는 두번이나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우리는 이제야 비로소 마약정책에 대한 다른 길을 시도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억압으로는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이룰 수 있을지는 아직 장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중독도 도움이 되지 않음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근심은 마리화나보다 훨씬 먼 곳에 가 있습니다. 우리는 마약 마피아를 겨냥하고 있는 것입니다.”

 

▲ 마리화나 합법화에 찬성하는 티셔츠를 입은 청년들

 

그 외에도 2014년 관타나모에 수용 중인 포로를 난민으로 받아 들이는 등 강대국과의 대립도 서슴치 않았다. 이렇듯 당시로서는 파격적이다 못해 정치적으로 위험해 보이는 정책들을 추진하기도 하였다.그는 여론의 저항을 받더라도 인권 등과 관련해서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관철시키고자 했으며 그를 바탕으로 생활은 다수의 평민의 입장에서, 인권을 위해서는 소수자들의 입장에서 서려고 항상 노력했다.

 

"정치인은 다수의 견해에 따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야만 선거에서 이길 수 있을테니까요, 그러나 어떤 길을 확신하게 되면, 때때로 선구자적인 결정을 하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소수의 편에 서는 정치적 용기를 발휘해야 합니다. 일부러 여론과 싸울 필요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여론의 노예가 되어서도 안됩니다."

 

▲ 공식 석상에서 무히카 대통령의 과감한 패션

 

▲ 누가 대통령인지..?

 

그는 한때 군사 독재에 맞서 게릴라 조직인 "투마파로스"의 리더로 활동하였다.
1970년대 하수구에서 무장 투쟁을 벌였고 여섯발의 총상을 입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나기도 했으며 또한 투옥 기간 중에는 땅굴을 통해 두번의 탈옥에 성공하기도 했다. 결국 군사 정권에 체포된 후 13년간 책조차 읽을 수 없는 독방에서 수감생활을 하다 1985년 국제 사면 위원회의 도움으로 석방되었다.

 

▲ 우루과이의 게릴라 조직 '투마파로스'

 

군사정권이 무너진 후 좌파 정치 조직인 민중참여운동(MPP)를 대표해 1994년 하원의원, 1999년 상원의원으로 당선되었고, 2005년에는 좌파 연합인 광역전선(Frente Amplio)가 집권하면서 농축수산부 장관에 임명되고 2009년에는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우루과이 제 40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된다.

 

그는 게릴라 시절에는 근본주의자로, 정계에 진출하면서는 실용주의자로 변화하며 적대 정치 세력에 대해 복수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인 연대를 추진하는 등 정치에 대해 맹목적인 태도를 경계하기도 하였다. 그가 게릴라 시절 당시 변절한 동료들에 대해 한 말을 보면 그의 정치적 사상이 어떤지 어렴풋이 알 수 있다.

 

"그들이 변절한 이유는 사실 간단합니다. 거울을 보다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봤기 때문이죠.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내 얼굴이 이렇게 초췌해졌군,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라고.. 그들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나약해진 것입니다. 이렇듯 솔직함이란 때로 아주 무서운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격정적인 동시에 지적인 순수함을 지니고 있습니다.(중략)나는 인생을 통해 참 여러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인간이란 동물이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때는 대가가 참 크다는 사실 같은 것 말입니다."

 

▲ 지나가는 닭 한마리가 인상적인 무히카 대통령의 인터뷰

 

▲ 윗 사진과 너무 대조된다..;;

 

우루과이에 거주하는 아코스타(Gerhald Acosta)는 자신이 일하는 종이공장에 출근을 했으나 신분증 기한의 만료로 작업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마땅한 이동수단이 없었던 아코스타는 집으로 가기 위해 히치하이킹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차들이 지나쳐 갈때 정부 자동차 번호판을 탄 차량이 멈춰섰고 아코스타는 안을 들여다 보고 깜짝 놀랐다. 자신이 타려는 차를 대통령이 직접 운전하고 있었고 조수석에는 영부인이 앉아 있었다. 대통령과 부인은 흔쾌히 자신을 태워 목적지까지 데려다 줬고, 아코스타는 너무 황당하고도 고마워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한다.
아코스타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 했다.

 

"대통령이 나를 차에 태워줬다. 그리고 상황을 설명하니 집까지 데려다 주셨다. 이 사실을 나는 믿을 수 없었다. 대통령 부부는 매우 친절했다. 그날 하루 동안 비록 일하지는 못했지만, 이 짧은 여행은 더없이 소중하고 유쾌했다"

 

또한 무히카 대통령은 한 아랍의 부호로 부터 소유하고 있는 1987년형 폭스바겐 비틀즈 차량을 100만 달러에 사겠다는 제의를 받았다. 무히카 대통령은 만일 차량을 100만 달러에 판다면 서민 주택을 건설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뜻을 밝혔지만 결국에는 기르던 개가 그 차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거절했다고 한다.

 

▲ 무히카 대통령이 28년동안 타고 다니는 1987년형 폭스 바겐

 

그 사람의 말에는 그 사람의 철학이 담겨져 있다. 무히카 대통령의 말들은 별도 어록으로 편찬될 정도로 좋은 말들이 많다고 한다. 주로는 검소한 생활, 정치 그리고 행복에 대한 철학이 담겨져 있는 말들이 많다.

 

"나는 가난하지만 마음을 절대 가난하지 않습니다. 삶에는 가격표가 없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질이 아니라 삶을 누릴 수 있는 시간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동정이 아니라 기회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적게 소비하는 것입니다."

 

"대통령과 국민 사이에는 거리가 없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통령을 지나치게 받을어 모시는 풍조를 없애야 한다."

 

"내가 무엇을 살 때 그것은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돈을 벌기 위해 쓴 시간으로 사는 것입니다. 시간을 아껴서 정말 좋아하는 일에 우리에게 힘이 되는 일에 써야 합니다. 시간을 우리 자신을 위해 쓸 수 있을 때 나는 그것을 자유라고 부릅니다."

 

"인생을 살면서 고통의 짐을 짊어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이 짐만 바라보며 살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앞을 향해 걸어가십시오. 우리가 기필코 지키고 사랑해야 할 만큼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므로"

 

"나는 가난하지 않습니다. 단순하게 살 뿐입니다. 사람이 사는데는 그다지 많은 것이 필요치 않습니다."

 

"나에게 가난한 자란 너무 많은 것을 원하는 사람입니다. 너무 많은 것을 원하는 사람은 도무지 만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가난의 옹호자로 비쳐지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다만 낭비와 불필요한 지출과 에너지 고갈과 무엇이든 탕진하며 사는 삶을 견딜 수 없을 따름입니다."

 

▲ 유엔 총회 연설 중인 무히카 대통령

 

"우리는 발전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지구에 온 것입니다. 인생은 짧고, 생명보다 더 귀중한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 2013년 유엔 총회 연설 -

 

개인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다. 이 분의 행보를 보고 있자니 왜? 라는 질문이 계속된다.

한 나라 권력의 정점에서 모든 것을 마다하고 낮은 곳에서 서민들과 함께 하는 대통령 그리고 이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

당장 우리나라에도 이런 분이 대통령이 된다면 어떨까?

대통령으로서의 품위가 없다느니, 교육도 제대로 못받았느니, 좌파 종북이라느니..

우리나라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일 생각하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어쨋든 이런 대통령을 가진 우루과이 사람들이 부럽다.

 

Posted by 한스재중